신한 프로리그 09-10, 10월 17일 (T1 vs 칸 3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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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기대대로 다시 나왔다. 정현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가을 감독의 나름 신트리가 들어맞았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아직 경험이 필요한 신예 저그를 토스에 붙여줬다는 것은 괜찮았다. 문제는 그 대상이 도재욱 선수라는 것이고. 이정현 선수의 주특기가 후반 운영으로 매끄럽게 가져가는 것이라고 봤을 때, 무난하게 후반으로 갔을 경우 토스에서 도재욱 선수만큼 잘 하는 선수는 드물다고 봐야 하니까.

그리고 도선수의 물량에 또 무난하게 발리며 올 첫 시즌 경기를 패배로 장식하고 말았다.

이유가 뭘까?

1. 저그가 4멀티를 보유하며 무난하게 하이브를 편 시점부터 토스가 3멀티 이후 4멀티를 가져간 이후, 그리고 저그가 12시를 가져가고 토스가 6시를 가져갔을 때 까지. 정말 변변한 견제 한번 교전 한번 없었다. 여기의 주역은 바로 커세어. 도세어라고 불리며 도재욱 선수의 약점이라고 누누이 지적받아온 이 유닛이 이 날은 참 효자 노릇을 해줬다. 스커지를 충분히 뽑아 중간에 한번 잘 싸먹었어야 했는데 소수 스커지는 매번 끊겼고, 커세어는 뮤탈에 충분히 데미지를 줬기도 했고 더욱 중유한 시점은 5시로 날아가던 드랍을 막은 장면. (그만큼의 드랍을 하려고 했다면 최소한 스커지와 동반했어야 했다. 대략 운영되고 있는 커세어를 다 쌈싸먹을 수 있을 분량의 스커지는 대동해야 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드랍이 떨어졌어도 캐논은 다 부술지 몰라도 넥서스에 조금 기스만 낼 정도의 분량이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어이없이 막힐 것은 아니였다.) 이 시점부터 이정현 선수는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2. 6시 멀티는 저그 본진 바로 옆 지척이였고, 한동안 캐논 3-4개로 허술하게 방어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의 견제가 없었다. 저그가 유효하게 공격하려고 시도한 대상은 3시의 미네랄 멀티와 드랍으로 공격하려고 했던 5시 멀티. 쉽게 끊을 수 있고 주력이 도달하기 힘든 6시 멀티부터 견제하는 것이 우선이였다. 그리고 매번 견제당했던 12시 멀티. 이날 이정현 선수의 공격 타이밍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토스가 활발하게 공격하러 다닐 수 있었던 것이고. (토스가 중반 이후 병력을 너무 잘 모아놓았기도 했다.) 12시 멀티가 두번정도 파괴당한 장면은 많이 아쉬웠다. 뒤늦게 방어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 처럼, 이 경기의 저그 병력은 기동성이 좋지 못했다. (멀티가 깨지지만 자리는 지키는 모습을 몇번 보여줬다.)

3. 그렇게 시간을 토스에게 주면서 저그가 한 것이 없다. 병력을 후덜덜하게 모은 것도 아니고, 멀티를 깔끔하게 가져간 것도 아니다. 트리는 빨리 확보했지만, 딱 그것 뿐이다. 두 해설이 줄곧 지적했듯이, 디파일러의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저그가 하이브로 빨리 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디파일러 말이다. 그럴 것이면 하이브는 왜 그리 빨리 가야 했나?). 하이브가 터진 이후부터 드랍 실패하고 디파일러가 나올때 까지 이정현 선수는 그냥 멍했던것 같다. 바로 디파일러가 추가되고 플레이그와 다크 스웜을 뿌리면서 토스의 주력을 효율적으로 묶어놓을 수 있었는데 귀중한 시간을 그냥 허비해버렸다.

그래도 잘한 것은,

1. 초반에는 특기대로 뮤탈 찔끔 보여주면서 뮤탈 대비를 하게 하고 러커를 보유하며 힘싸움을 준비. 여기까지는 (오프 시즌에서) 이겼을 때 무난하게 준비하던 상황 대로 흘러갔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자신보다 훨씬 이름값이 높은 선수를 상대로 꽤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생각까지만이다. 나도 저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2. 중간중간 사이오닉 스톰에 치명적인 피해는 받지 않았다. 이 선수의 장점중에 하나인데, 다수의 병력을 적당한 수만큼 보내주면서 사이오닉 스톰을 허비하게 만든 뒤에 덮쳐버린다. 혹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저글링 떼가 한쪽으로 우회 기동을 하면서, 경로에 예측 사격됐던 사이오닉 스톰을 피해버린다. 이런 모습으로 소수 싸움에서는 그럭저럭 좋은 모습은 보여줬다. (후반 12시에서 사이오닉 스톰에 잔뜩 지져지던 저글링 부대를 보고 한 해설은 가져다준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그 이전의 훌륭한 회피 기동을 간과한 멘트라고 생각한다. 약 3-4회의 사이오닉 스톰을 피해버리고 이정도면 충분하지, 하고 덤벼들었던 것인데, 사이오닉 스톰은 그만큼이 더 준비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정현 선수가 못했던 장면이 아니라 도재욱 선수가 잘한 장면이었던 것.)

바야흐로 저그의 시대다. 요즘 저그는 테란을 만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프로토스를 만나도 도시락처럼 생각할 뿐이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팀들 중 반 이상 수준급의 저그 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T1의 저그라인도, 일명 'T1 저그' 라고 불리우던 오명을 벗으려고 하고 있다. 10월 18일, 지난 시즌 하위팀인 위메이드는 두명의 저그를 앞세워 지난 시즌 상위권이였던 STX를 완파했다. 아직 초반에 불과한 시즌이지만, 저그의 벽은 높아보이기만 하다.

그러니 좀 잘 해보자. 응?

PS. 2009년 10월 20일. 칸은 다시 3:0 패배. 상대가 나빴던 것 보다 칸의 선수들이 잘 하지 못했다는 느낌. 분명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인데. 뮤직비디오를 찍고 또 이런 저런걸 하다 보니까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인지. 분위기가 아직 들떠 있는 것인지. 아직 초반 두경기, 세경기를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운 점. 이럴때 고참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성은씨도 이제 슬슬 살아나야 할 시기가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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